고자영 사공 (高子英 師公) / 량극권 사공 (梁克權 師公) / 박성주 사부 (朴性柱 師父)/ 계보도



1918년 하북성(河北省)에서 출생하시고 6세부터 무공수련을 시작하셨다.
6세부터 13세 까지 주로천(周魯泉)노사에게서 형의권과 팔괘장을 전수받았다.

주로천 노사께서 돌아가신후 1934년 북경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공부를 마치고 1939년 귀향한후 두 번째 이며 사공의 무공진전에 가장 중요한 두번째 사부이신 정유신(程有信)노사와 인연이 된다.
그리하여 1939년부터 1946년경까지 정유신 노사에게서 본격적으로 내가삼권을 전수받게 된다.

1946년 국민당 군대에 입대하여 장교로 근무하게 되는데 당시 국민당 군의 장성이었던 장음오(張陰梧)노사를 부관으로 지내던 한 친구를 통해 소개받게 된다.

세 번째 사부인 장음오 노사에게서는 내가권의 기예를 더욱 심화시키는 외에 주로 실전 전술전략의 심오한 원리를 배우게 된다.

그 후 1952년 공산당 정부에 체포되어 '국민당에 가담한 죄'로 15년을 천진근교의 감옥에서 보내게 된다. 감옥에서의 생활은 무공수련 외에는 별로 할 일이 없었다.
사공께서는 "당시 매일 새벽부터 정오까지는 오직 무공수련만 했었다."라고 말하신다.

극도로 열악한 환경하에서 대부분의 감옥수의 건강은 극히 악화되었으나 사공만은 내가권 수련덕분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1967년 출감은 했으나 공산사회에서 그의 전력(前歷)으로는 구할 수 있는 직업이 없었다.

사공이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은 감옥에서 하던 작업 밖에는 없었다. 그리하여 사공은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서 이번에는 죄수가 아닌 '자유인인 노동자'의 신분으로 다시 15년을 지낸다.

사공은 이 30년의 감옥생활 동안 내가권을 수련하고 익히며 정련시킨후 북경으로 옮기셨다.

그 후 권법으로 유명한 하북성, 산서성, 호남성 등지를 여행하시며 수많은 윗세대의 권사들을 방문하여 내가권에 관한 이론과 수련에 관해 토의하셨다. 그리하여 예를 들어 형의오행권(形意五行拳)의 경우 9∼10종의 서로 다른 형의문파의 수련형을 시범할 수 있으며 그들은 왜 그런방식으로 수련하며 각 수련형의 특점은 무엇인가를 설명하실 정도로 박식하시다.

그 밖에도 사공은 유명한 실전일화들을 남기셨으며 사형(師兄)인 류흥한(劉興漢)노사와 함께 북경시신주무관(北京市神州武館)의 관장(館長)을 지내셨다.